화가이자 건축가로 불렸던 훈데르트바서는 항상 독창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는 건축물을 사람의 피부와 연관 지어 생각했는데, 첫 번째 피부는 우리의 피부를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피부는 사람들이 입는 옷, 마지막으로 세 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거주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훈데르트바서는 입주자와 건축물간의 상호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건축치료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별명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는 한 마을에 위치해 있는 쓰레기 소각장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는 상황에서, 그가 건물의 겉 부분을 리모델링 함으로서, 주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많은 입주자의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건축가로서의 훈데르트바서의 대표작은 블루마우 온천마을이다. 이의 특징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땅 속에 지어졌다는 것이며,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며, 어릴 적 그 순수했던 기억들을 되 살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축물을 오직 보기만 했는데 마음이 치유되다니, 역시 건축치료사라 불릴 만 하다. 그가 말한 말 중에 “우리가 혼자서 꿈을 꾸면 오로지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인 된다.”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 어떤 건축물을 짖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실현하기 어려워 결국에는 중도하차하고 만다. 하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한둘 모이다 보면 힘을 합쳐서 실현시켜 새로운 세상, 거주공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훈데르트바서는 대단한 예술가였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예술, 건축을 했으며 지상낙원을 남기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물들을 한곳에 모아 둔다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블루마우 온천마을부터, 슈페틸라우 쓰레기 소각장도 그러하다.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선물을 기억하며, 그가 중요시 여긴 행복을 잃지 말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1. 2. 26.
2011. 2. 23.
그림같은 건축
중앙일보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이응노의 그림 같다, 으스대지 않고 풍경에 스며든 미술관' 기사를 읽고:
http://pdf.joinsmsn.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201102210137
충남 홍성군에는 고암 이응노 화가의 기념관이 있다. 요즘에 지어진 박물관이라 시골 풍경에 알맞지 않게 튀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연에 스며든 것처럼 전혀 튀지 않고 잔잔한 느낌을 준다. 기념관의 내부 또한 텅 빈 공간을 보는 것 마냥 한눈에 봤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4개의 전시관이 각각 다른 각도에 숨어 있다. 이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조성룡씨는 건물의 외부 벽 또한 흙벽으로 만들어 정말 자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또 다른 방면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는 기념관을 지은 것이다. 오늘날의 건물들을 보면 죄다 튀는 디자인, 내부에는 대리석등을 이용해 고급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고암 이응노 화가의 기념관처럼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들을 도심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짧게 해본다.
'이응노의 그림 같다, 으스대지 않고 풍경에 스며든 미술관' 기사를 읽고:
http://pdf.joinsmsn.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201102210137
충남 홍성군에는 고암 이응노 화가의 기념관이 있다. 요즘에 지어진 박물관이라 시골 풍경에 알맞지 않게 튀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연에 스며든 것처럼 전혀 튀지 않고 잔잔한 느낌을 준다. 기념관의 내부 또한 텅 빈 공간을 보는 것 마냥 한눈에 봤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4개의 전시관이 각각 다른 각도에 숨어 있다. 이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조성룡씨는 건물의 외부 벽 또한 흙벽으로 만들어 정말 자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또 다른 방면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는 기념관을 지은 것이다. 오늘날의 건물들을 보면 죄다 튀는 디자인, 내부에는 대리석등을 이용해 고급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고암 이응노 화가의 기념관처럼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들을 도심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짧게 해본다.
2011. 2. 17.
옷이 말해주는 건축
디자인 하우스, 럭셔리(2007년 9월호)
[Architecture & Fashion]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 건축가 정기용
'자연으로 비운 집, 사람을 존중하는 옷' 기사를 읽고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1886&category=000000060002
패션디자이너 진태옥과 건축가 정기용이 옷과 건축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그들은 옷과 건축이 모두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에서부터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옷은 육신의 연장을 위한 최초의 건축이라는게 건축가 정기용의 생각이다. 진태옥은 작품에서 옷을 입힌다는 표현보다 걸쳤다 빠져 나간다, 통과한다 등 ‘바람’같다는 느낌으로 표현한다고 하였다. 그 분은 옷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각각의 요소를 보여주고, 옷은 그것들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고 하였다. 한편, 정기용 건축가는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옷을 만들어 보게 한다고 한다. 치수를 재고 옷 본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서 2차원 평면을 3차원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언뜻 보면 전혀 무관한 두 창조의 영역이 상당한 유사함으로 묶인다고 할 수 있다. 패션과 건축 모두 3차원적인 결과물을 창조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2차월 평면의 스케치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아직 완전한 이해에 도달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상호 연관서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패션과 건축 모두 story telling이 큰 의미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건축의 concept을 잡을 때에도, 패션의 담긴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에도 창조자만의 story가 있을 때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건축과 패션을 바라볼 때 관심과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건축과 패션의 창조자들이 건축물과 옷으로 표현하고 있어도 맘 속으로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패션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협동작품이 탄생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벌써 화가와 건축가가 건축물을 공동작업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앞으로 모든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Architecture & Fashion]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 건축가 정기용
'자연으로 비운 집, 사람을 존중하는 옷' 기사를 읽고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1886&category=000000060002
패션디자이너 진태옥과 건축가 정기용이 옷과 건축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그들은 옷과 건축이 모두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에서부터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옷은 육신의 연장을 위한 최초의 건축이라는게 건축가 정기용의 생각이다. 진태옥은 작품에서 옷을 입힌다는 표현보다 걸쳤다 빠져 나간다, 통과한다 등 ‘바람’같다는 느낌으로 표현한다고 하였다. 그 분은 옷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각각의 요소를 보여주고, 옷은 그것들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고 하였다. 한편, 정기용 건축가는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옷을 만들어 보게 한다고 한다. 치수를 재고 옷 본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서 2차원 평면을 3차원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언뜻 보면 전혀 무관한 두 창조의 영역이 상당한 유사함으로 묶인다고 할 수 있다. 패션과 건축 모두 3차원적인 결과물을 창조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2차월 평면의 스케치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아직 완전한 이해에 도달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상호 연관서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패션과 건축 모두 story telling이 큰 의미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건축의 concept을 잡을 때에도, 패션의 담긴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에도 창조자만의 story가 있을 때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건축과 패션을 바라볼 때 관심과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건축과 패션의 창조자들이 건축물과 옷으로 표현하고 있어도 맘 속으로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패션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협동작품이 탄생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벌써 화가와 건축가가 건축물을 공동작업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앞으로 모든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2011. 2. 5.
건축을 위한 여행
중앙일보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승효상의 아키텍처 '건축, 난 여행에서 배운다' 기사를 읽고:
나도 대학생이 되면 방학을 이용해서 배낭을 메고 유럽 쪽 건축물을 둘러 보는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스페인에 막내 이모가 살고 계시니까 제일 먼저 그 곳으로 가서 가우디가 설계 디자인한 화려한 건축물들을 보고 싶다. [또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건축] 책을 들고 표시를 해가면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여러 나라의 문화를 알고, 세계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건축물을 설계하는게 꿈이다. 그런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도 있다는 것을 같이 기억하면서 내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노력을 하겠다.
2010. 12. 29.
건축가 승효상 강연회 Seung H。Sang's Lecture
얼마 전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승효상 건축가의 강연이 있었다. 학교 수업중에 있었던 것이라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외출증을 받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대백화점을 찾아 대략 2시간동안 열심히 강연을 들었다.승효상건축가는 강연의 시작을 건축이란 무엇인가? 로 시작하셨다. 나또한 그 질문을 받자 마자 생각했다. 건축이란 자연을 헤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건축이라는 것에 정의를 내리셨다. 바로 건축은 삶과 연관되어 있으며, 조각하는 공간이라고.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깨달은 점이 있다. 건축이란 것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 지어지고 있는 집, 아파트와 몇천년 전에 지어진 집이 다를것이 없다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 중심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동양의 경우는 모든 방면으로 개방되어 있어 모두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난다고 하셨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들은 강연인 만큼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아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과 사진도 찍고, 강연을 들으며 건축에 대한 꿈이 더 커졌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 더 더욱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겼다. 건축을 배운 후, 나 역시 설계사무소를 열어서 일을 하는 것이 희망이다. 이것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건축을 배우고 싶다는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쭉 공부할 것이다.
2010. 12. 20.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를 읽고
디자인 뮤지엄 지음권은순 역
홍디자인 출판사
우리는 흔히 의자를 가구라고 치부하며 당연히 그 디자인은 가구 디자이너들이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옳지 않았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의자들은 전부 1859년부터 2003년까지 건축가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의자들이다. 제목과 같이 이 의자들은 의자를 향한 세상의 시각을 바꾼 아주 의미 있는 창조물이 되었으며, 의자 본연의 미적 요소와 편안함으로도 뒤처지지 않아, 현재까지도 이 디자인들과 같은 의자들이 생산되고 있다.
소개되어있는 의자들 중에 나의 관심을 끈 의자는 1968년 베르너 팬톤이 디자인한 “팬톤”이라는 이름의 의자다. 이 의자의 특징은 하나로 연결된 유선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다. 시트 부분은 움푹 패어 있어 엉덩이를 포근히 감싸주며 사용자에게 편안함을 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의자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관능미를 포함하고 있는 관계로, 한 패션잡지에 “남편 앞에서 옷 벗는 법”이란 포토에세이에 등장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저 내가 바라는 직업인 건축가들이 만든 의자들이 소개 되어있는 책이기 때문이었다. 건축가들 있는 이 대부분 건물을 짓는 것은 맞다. 나는 단순히 건축가들이 의자에 대해서는 아무 관련이 없는 커다란 빌딩과 역사, 공항 이런 것들만 디자인하고 짓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디자인에 관해서는 경계선이 없다.” 라는 말처럼 좋은 디자인이란 그 디자인이 건물이던 가구던 상관없이 모든 것을 포용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온 건축가들처럼 나 역시 이들처럼 의자까지도 디자인 할 수 있는 그런 건축가가 되는 꿈을 꾸며 책을 덮었다.
2010. 11. 23.
'건축의 거인들, 초대받다'를 읽고
자예 애베이트, 마이클 톰셋 지음김주연 엮음
김현정 옮김
이 책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10명의 건축가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도중에는 내가 잘 아는 자하하디드와 안도다다오가 있는데 먼저 자하하디드는 이번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프로젝트를 총감독하고 있는 건축가이며 안도다다오는 사전에 독후감에서 소개했듯이 학력은 고졸이 전부이지만 건축가중에서도 손가락에 뽑히는 건축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것은 “프리츠커상을 받은 사람중 가장 젊었을때 받은 사람은 몇 살때 받은 것일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10명외에도 많은 수상자들이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적어도 50살 때 프리츠커상을 받은 리처드 마이어가 가장 젊었을 때 받은 사람이였다. 왜 난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물었을까? 아마도 나는 건축 쪽에 하도 관심이 많다보니 만약 내가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다면 평균적으로 몇 살 때 쯤 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안도다다오와 자하하디드를 제외한 8명의 건축가들에 대한 내용을 유심히 읽어봤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띄는 한명이 있었다. 그는 바로 프랭크 게리이다. 그는 1929년에 태어나 1989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그는 누구나 알만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규칙 해 보이는 덩어리들이 한곳에 모여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지만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과,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본다면 내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을 배우고 싶어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에서 만난 10명의 건축가들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등을 이 책에서 배웠으며 그로 인해 내가 건축을 배워서, 스스로 설계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의 아웃라인이 조금이나마 더 깨끗이 윤곽이 잡혔기 때문이다.
또 다른 표현의 건축
중앙경제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다시 태어난 소반, 군더더기 빼고 쓰임새 더하고' 기사를 읽고: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57807
소반은 음식을 차려 나르고 받치는데 쓰인 용품이다. 집안 어느 자리에 놓아도 소박하면서도 조화로움을 풍기는 게 소반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사용하는 용품도 달라졌다. 요즘에는 소반을 사용하는 가정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에서 소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여러건축가들도 동참했는데, 그중에는 건축가 승효상씨도 있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소반을 만들었고, 그마다 담고 있는 의미 또한 달랐다. 승효상씨의 소반은 선과 면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건축가 장윤규씨의 작품 같은 경우, 현대 건축물의 축소판을 보는 것처럼 과감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하나 있는데, 이들은 왜 다시 소반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마도 그 옛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의 또 다른 전통문화를 세상에 알릴 기회로 만들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소반이라는 전통 물품도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한 것이 분명하다. 건물을 세우는 것과는 무관하지만 건축이라는 학문도 예술이라는 큰 학무네 속해 있기 때문에 가구, 소반과 같은 전통물품을 재구성 하는 것도 건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건축이라는 학문이 여러 방면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다시한번 배우게 되었으며 항상 기초가 되고,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소반, 군더더기 빼고 쓰임새 더하고' 기사를 읽고: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57807
소반은 음식을 차려 나르고 받치는데 쓰인 용품이다. 집안 어느 자리에 놓아도 소박하면서도 조화로움을 풍기는 게 소반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사용하는 용품도 달라졌다. 요즘에는 소반을 사용하는 가정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에서 소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여러건축가들도 동참했는데, 그중에는 건축가 승효상씨도 있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소반을 만들었고, 그마다 담고 있는 의미 또한 달랐다. 승효상씨의 소반은 선과 면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건축가 장윤규씨의 작품 같은 경우, 현대 건축물의 축소판을 보는 것처럼 과감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하나 있는데, 이들은 왜 다시 소반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마도 그 옛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의 또 다른 전통문화를 세상에 알릴 기회로 만들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소반이라는 전통 물품도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한 것이 분명하다. 건물을 세우는 것과는 무관하지만 건축이라는 학문도 예술이라는 큰 학무네 속해 있기 때문에 가구, 소반과 같은 전통물품을 재구성 하는 것도 건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건축이라는 학문이 여러 방면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다시한번 배우게 되었으며 항상 기초가 되고,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2010. 11. 17.
‘수백당’ 그리고 ‘자하재’
중앙일보 2010년 11월 12일
'뉴욕현대미술관으로 간 한국 건축- "바깥으로 열린 공간, 정제미 훌륭"' 기사를 읽고: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48556
수백당은 건축가 승효상씨가, 자하재는 건축가 김연준씨가 설계했다. 이 두 건축물은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는 기회를 얻었다. 외국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작품을 전시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MoMa의 건축부문 수석 큐레이터인 배리 버그돌은 한국을 방문하여 병산서원, 종묘, 부석사 등을 돌아보며 한국 전통건축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 후 그가 말하길 한국건축의 특징은 “공간이 외부를 향해 열리도록 정제한 것”이라 했다. 그에게 수백당과 자하재, 이 두 건축물이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을 가장 잘 담아내었다고 해석되었기에 MoMa에 전시되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백당과 자하재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먼저 수백당은 비움의 미학을 담아낸 집이다. 버그돌에겐, 내부 공간을 잘게 나누워 바깥공간과 끊임없이 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천장이 뚫려있어 하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이 그 예들 중 하나이다. 자하재는 두 세대의 공간이 독립되어져 있다. 버그돌은 이 집을 보고 23개의 방들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마당이 있다는 점에서 여백과 외부와의 연결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나는 자하재 라는 집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자하재의 2층에 있는 마당들을 구름다리로 이어 좀 더 공간간의 대화를 크게 만들어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뉴욕현대미술관으로 간 한국 건축- "바깥으로 열린 공간, 정제미 훌륭"' 기사를 읽고: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48556
수백당은 건축가 승효상씨가, 자하재는 건축가 김연준씨가 설계했다. 이 두 건축물은 뉴욕 현대 미술관
그렇다면 수백당과 자하재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먼저 수백당은 비움의 미학을 담아낸 집이다. 버그돌에겐, 내부 공간을 잘게 나누워 바깥공간과 끊임없이 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천장이 뚫려있어 하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이 그 예들 중 하나이다. 자하재는 두 세대의 공간이 독립되어져 있다. 버그돌은 이 집을 보고 23개의 방들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마당이 있다는 점에서 여백과 외부와의 연결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나는 자하재 라는 집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자하재의 2층에 있는 마당들을 구름다리로 이어 좀 더 공간간의 대화를 크게 만들어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2010. 11. 14.
경동교회 Gyoengdong Church
경동 교회는 2번째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과 함께 살아 숨쉬는 건물이다. 오랜 세월을 걸쳐 덩쿨이 벽돌을 타고 올라가 겉표면을 거의 다 덮
경동교회의 내부 중 몇 곳은 전기가 아닌 자연광을 이용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비록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작아 밝지는 않았지만,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만큼 어두침침하면서도 앞을 볼 수 있게끔 한 조경은 많은 사람들에게영감을 받게끔 도와줄 것 같았다.
겉에서 보면 건물자체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마치 높은 벽돌탑이 띄엄띄엄 놓여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 음푹 파인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정말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통로라 할만큼 아름다웠다.
근대의 건물들에 사용되어지고 있는 콩크리트, 대리석, 유리가 아닌 벽돌은 딱딱한 느낌을 줄 것같지만 오히려 오랜세월이 지나면 덩쿨들이 타고 올라가 자연과 조화되는 느낌을 받아 여름에 보면 시원하면서 상쾌해지는 느낌까지 줄 수 있는 것 같다.
경동교회에 대한 여러 다른 사진들:
http://blog.naver.com/phs7443?Redirect=Log&logNo=10089405580
출처:
http://blog.naver.com/phs7443?Redirect=Log&logNo=10089405580
Gyoengdong Church, located in JangChung-Dong, was built by Soo Geon Kim and it was a very inspiring piece of architecture. It seems like an ancient castle because it is only built with bricks. I wanted to take pictures of inside, but I was not able to because there was a occurring ceremony. However, you can get an access to some pictures of inside through the link below. Gyeondong Church is a building that lives with the nature, as you can see in the second photo. You can easily experience the harmony of nature and architecture while your eyes are looking at the vines that run on the wall. Some places inside of the church use solar power instead of electricity which come in through windows. It does not suffice to light the entire church up, but it is enough that will allow people to pray and have a service. If you look the outside, you will see that the building does not connect smoothly and big brick towers were put in places. The crack between the towers seem like the path between the heaven and the earth.
Bricks, not the material that are used in the modern architecture like concrete or glass, sets a perfect harmony with vines which represents the nature and give us an impression that it looks cool when we look at it during the season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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